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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길을 걷다 - 윤종희
BY 은혜로 사는 자2022.11.11 19:0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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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년의 길을 걷다

           -평창 가을 문학기행을 다녀와서

 

윤종희

 

  가을날의 소풍 문학기행. 새벽 이른 시간, 제주와 경주 그리고 대구서 오신 문우님들은 그 전날 서울에서 자고 오셨단다. 다들 처음 보는 얼굴들 만면에 웃음이 가득하다. 청하의 우산 아래 모여 사십 오인승 버스가 꽉 찼다.

 

  서울을 출발, 평창 대화마을 대화주민센터 강당에서 제21회 가을 세미나 후, 점심을 먹고 심산 변광옥 선생의 옛집으로 옮겨 ‘심산 문학의 집’ 개관식과 시단 140회 시낭송회를 가진 후, 숙소 켄싱턴호텔로 이동하여 하루 일정을 마치고, 이튼 날은 상원사 사고史庫와 평창 둔내역 청하 선생님 시비를 보는 것으로 문학기행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세미나는 대화주민센터 강단에서 <역경을 이기는 문학의 역활>이란 명제를 가지고 심포지엄 형식으로 진행됐다. 강사로 문예운동 편집주간 조명제, 영남대 장사현 교수를 초빙했다. 여행에서의 변수는 늘 있는 법, 첫 강사 조명제 선생은 잘못된 전달로 해서 후발 주자로 오는 바람에, 청하 선생님께서 대신했다. ‘감염병 시대의 문학적 대응’이란 주제를 간략하게 전하셨으나, 분명하고 간결하여 오히려 주제가 확실하게 전달되었다. 두 번째 강사 장사현 교수는 지금 당면해 있는 ‘역경을 이기는 문학의 역활은 무엇인가?’란 물음으로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사람들 마음을 위로하고 문학은 곧 ‘文이 人이다‘라는 표현으로 문학인들의 인격에 대해서 강의하신 후, 질의하고 응답하는 형식으로 진행. 원론적이 아닌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질의와 응답으로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주제 발표 세미나를 끝내고 바로 심산 변광옥 선생의 시골집 ’문학의 집‘으로 이동. 도착한 곳에는 한 상 가득 음식들이 차려져 있었고, 자리 배치부터 무대 장식 등 행사를 진행하는데 차고 넘칠 정도로 모든 것이 풍성했다. 뒤로는 가리왕산이요, 집으로 들어가는 입구엔 선생이 초등학교 시절에 심었다는 은행나무가 관록을 자랑하며 떡하니 버티고 서서 우리를 맞는다.

 

  심산 선생은 이미 그곳의 유명인사로 문학의 집 개관을 축하해 주기 위해서 옛 직장동료와 수원합창단 그리고 평창군수 등 축하객들이 많이 와 계셨다. 맑고 높은 하늘과 뒤로 가을 산을 배경으로 합창단의 노래와 시낭송회, 마지막으로 주인인 변광옥 선생의 섹스폰 연주는 깊어가는 가을날 고요하고도 깊게 심령을 파고들었다. 그 여운에서 깨어날 때 즈음엔, 가을날 산골은 산등성이로 해가 넘어가자 벌써 썰렁해져 몸이 움츠러들었다.

 

  하루를 머물 켄싱턴호텔에 도착했을 땐, 땅거미 내려앉아 어두컴컴 해졌다. 식당을 찾아가는 길, 별만 있는 산골길을 언제 걸어봤던가. 잠시였으나 낭만적이었다. 저녁을 먹고 호텔로 들어가 여장을 풀었다. 여행 갈 때는 만리장성 쌓을 동료에 신경이 가는 법, 다행으로 언제 어디서든 머리만 땅에 닿으면 잘 자는 편이다. 세 사람이 한 방에서 숙면했다. 이른 아침 깨어나 밖을 내다본 윤이님이 눈이 왔단다. 그럴 리가 하면 내다보니 길가에 서리가 하얗게 내렸다. 예쁜 윤이님은 눈이란다.

 

  아침을 북어해장국으로 시원하고 맛나게 먹고 상원사로 출발했다. 천년의 고찰로 고려말부터 조선왕조실록(사고史庫) 일부이기는 하나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렜다. 그러나 기대하고 기대했던 ’평창 오대산사고史庫‘는 시간 관계상 통과해야 했다. 사고로 들어가는 길은 자동차로 가기에도 위험한 곳이란다. 심산 변광옥 선생이 사전 답사갔다 오는 길에 자동차가 전복되어 폐차시키고 새 자동차를 사셨다는 설명을 덧붙이셨다. 그러하여 관광버스로 상원사까지 올라가서 절을 보고 일행 중 원하는 사람만 선재길을 걷고, 나머지는 버스로 월정사까지 내려와 편한 전나무숲길을 걷는 것으로 했다.

 

  청하 선생님은 우리도 힘든 깎아 지른 듯 가파르고 높은 상원사 돌계단을 쉬엄쉬엄 기어코 한 발짝씩 다 올라오셔서 “이게 고행이다”하셨다. 그 연세에 여기까지 올라오셨다는 사실이 놀랍고 기뻤다. 아직 기력이 있으시단 증거이니. 선생님은 의자에 앉아 잠시 숨고르기를 하신다. 내려갈 때는 평지를 택하기로 했다. 우리는 경내를 돌아보고 바쁜 일정 때문에 하산하여 월정사 전나무숲과 선재길로 나눠 서로의 길을 걸었다.

 

  몇 년 전 겨울 가족여행 길에 월정사를 들렸다. 세상은 온통 하얗고 월정사 깊은 산사는 눈에 덮인 채 적요했다. 절로 들어가는 입구 오대산 계곡물은 꽁꽁 얼어 있었다. 아이들과 당기고 밀어주며 어린 날 동무들과 놀던 때를 생각하며 얼음 위을 지쳤다. 고요한 적막을 깨고 시끌벅적한 소리가 천년의 숲을 깨울 때, 코발트색 높고 맑은 겨울 하늘과 전나무숲도 이방인에 놀라, 겨울잠에서 몸을 부르르 떨던 그때가 아슴아슴하다.

 

  그날 선재길을 걷고 싶은 마음 굴뚝 같았으나, 겨울날 높은 산에 해는 기울고 있었다. 언젠가는 다시 오리라 했던 그 길을 오늘은 가볼 수 있어 다행이었다. 아니 이길 걷을 욕심에 이번 여행을 왔는지도 모르겠다.

  오늘 일정도 빠듯하여 천천히 풍경 속 풍경들을 마주할 시간이 부족할 듯하여 안타까웠다. 그러나 상원사 앞 선재길에 들어서면서부터 월정사에 다 닿을 때까지, 오대산 깊은 계곡물이 동무해 주며 ’카르페 디엠Carpe diem’ 순간을 즐기라 한다. 너럭바위를 넘어가기도 비껴가기도 하며 물이 물이 된다. 앞에 있는 것과 마주하지 않고 좁고 넓게 얕고 깊게 흐르며 물이 길이 되는 오대산 계곡.

 

  천년의 숲길, 아름드리 전나무와 들풀. 가끔 불어오는 산바람 옆으로 졸졸거리며 따라오기도 콸콸거리며 내리닫기도 하는 오대산 물줄기의 청량한 계곡물 소리. 나무들 수런거림과 바위는 가을 햇볕을 받아 하얀빛으로 자연과 하나 돼 오케스트라를 연주한다. 선재길을 따라 내리 걸으며 구도의 길은 아닐지라도 호젓한 길에서 만나는 자연이 신비하고 경이롭기만 하다.

 

  월정사로 내려와서 점심은 예약해 둔 산채비빔밥에 제주의 런던아이 정영숙 선생의 맥주와 사이다를 섞어 만든 칵테일로 신세계를 경험했다. 시간 관계상 ‘메밀꽃 필 무렵’의 이효석문학관은 들리지 못했으나, 버스 안에서 청하 선생님은 소설가 이효석의 뻔한 이야기가 아닌 생생하게 살아있는 역사를 이야기해 주셨다. 청하 선생님의 인문학 강의를 들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걸어 다니는 박물관이시다.

 

  돌아오는 길, 횡성 둔내역사 앞 토마토시비공원에 청하 선생님의 ‘달’ 시비 옆에서 사진도 찍고, 이기태 선생님의 영어 낭송으로 청하문학회가 추구하는 세계를 향한 문학의 질을 한층 높였다. 황금찬 선생 시비와 다른 문인들 시를 감상하고 옆에 있는 카페로 옮겨 그곳에서 다시 국어와 영어로 다시 한번 청하 선생님의 시 ‘달’을 낭송하는 시간을 가지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몸을 싣었다.

 

  1박 2일 만리장성을 쌓은 일정, 스승님 밑에서 같은 길을 가는 문우님들과의 감회가 남달랐다. 개인적인 게 일상화된 세대에 모르는 이와 함께 잔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닐 터, 그러함에도 만리장성을 쌓은 다음 아침 다들 행복한 기색이 역력했다.

 

  청하 선생님 밑으로 모인 우리, 청청하게 푸르른 소나무 같던 선생님도 이젠 등걸이 휘셨다. 그렇다고 소나무의 본질이 변할 수는 없는 것. 그래서 더 좋다. 선생님 앞에서 응석도 부릴 수 있고 등걸에 기대도 푸근하실 선생님. 우리 곁에 계시니 복이다. 가을 문학기행에 함께한 청하문우님들도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청하 선생님 고맙습니다, 저희 곁에 계셔주셔서요.

2022. 10. 23. 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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